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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첨부파일

  • 포항문화원, 2014-07-23 10:51, Hit:1,443
  • 포항지역에 언제부터 사람이 정착하고 살기 시작했는가에 대해서 아직까지 분명하게 밝혀진 바는 없다. 그러나 지표조사를 통하여 확인된 몇몇 유적의 존재와 이곳에서 발견된 석기를 통해 볼 때, 후기구석기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 기계평야 일대와 호미곶 일대, 그리고 장기면 산서리의 하안단구지대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거주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장기면 산서리에서는 후기구석기시대의 대표적인 석기인 몸돌(石核)과 격지(剝片)가 다수 확인되었다. 이러한 사실로
 

삼한 ~ 통일신라시대첨부파일

  • 포항문화원, 2014-07-23 10:51, Hit:1,596
  • 삼한시대는 우리나라의 역사가 중국사서에 처음으로 기록된 때이다. 중국의 역사책인 『삼국지(三國志)』의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에는 진한(辰韓) 지역에 모두 12개의 소국(小國)이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현 포항시 지역에는 근기국(勤耆國)이 위치하였으며, 흥해지역에는 다벌국(多伐國), 기계지역에는 초팔국(草八國)이 있었다고 비정되고 있다. 신광면 마곡리에서 출토된 ‘진솔선예백장(晋率善穢伯長) 동인(銅印)’은 이 지역에 예
 

고려시대첨부파일

  • 포항문화원, 2014-07-23 10:50, Hit:1,258
  • 고려 현종9년(1018) 포항은 경주의 속현으로, 경주에 소속된 4군 10현 중 1군(흥해)과 5현(연일·청하·신광·기계·장기)으로 현재 포항시 지역과 거의 일치하고 있다. 고려시대에 이르러 역마제와 봉수제가 완비되었으며 조선시대까지 계승된다. 또한 왜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많은 성이 축조되는데, 영일읍성과 흥해읍성이 이 시기에 축성되었다. 대송면 남성리에 위치한 연일읍성은 원래 토성으로 현종2년(1011) 현기를 남성동으로 이건하면
 

조선시대첨부파일

  • 포항문화원, 2014-07-23 10:49, Hit:1,753
  • 태태종15년(1415) 경주부가 설치되면서 흥해·영일·장기·청하를 경주부(慶州府)의 주군현(主郡縣)으로 삼았으며, 기계현·신광현을 속현(屬縣)으로 두고 죽장·성법이부곡을 관할하였다. 영조23년(1747)에 남성동에 위치한 영일읍치를 장흥동으로 옮겼으며, 이후 순조6년(1806)에는 장흥동에서 생지동으로 옮겼다. 고종8년(1871)에는 읍치를 다시 생지동에서 대잠동으로 옮겼다가, 고종 32년(1895)에 다시 생지동으로 옮기게 된다. 이
 

근세와 현대첨부파일

  • 포항문화원, 2014-07-23 10:25, Hit:1,167
  • 포항은 1914년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연일군·흥해군·청하군·장기군 4군이 통합되어 영일군이 되며, 이와 같은 체제는 포항시가 출범하는 1949년까지 이어진다. 1995년 시·군 통합에 의해 포항시와 영일군은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항의 근대 문화유산은 일제에 대항한 의병활동과 3.1 독립만세운동 등과 관련된 유적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죽장면의 의병활동과 송라면의 만세운동은 지역 주민의 독립의식을 잘 대변하고 있다.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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